좋은 글이에요.

[스크랩] 구두도 즐겁겠구려

황승면(바실리오) 2010. 12. 30. 07:2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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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부역 앞, 느티나무 교목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. 나는 교목들이 흔들리는 푸른 그림자를 향해 걸어갔다.

그때 저쯤 낮은 벽 아래 구두를 닦는 노인이 보였다. 노인은 역사 앞 푸른 바람을 즐기며 쉬지 않고 솔질을 하고 있었다. 갑자기 그분에게 구두를 맡기고 싶었다. 나는 구두를 벗어 맡기고 노인이 권하는 의장에 앉았다. 노인은 내 구두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. 그러더니세상을 즐겁게 사시는구려.” 그랬다. 멈칫 놀라는 내게 다시신발 뒤축이 많이 닳았다는 뜻이유.” 그러며 짧게 웃었다
.

이 일을 얼마나 하셨지요?” 노인은 40년을 넘게 했단다. 순간 놀랐다. 남의 구두나 닦는 일에 생애를 따분하게 바칠 수 있다니! 그런 나의 속내를 느꼈는지 노인은 낡은 나무통에서 신문 한 조각을 꺼내 보였다. 그 노인을 취재한인생 40년 구두 닦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였다
.

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. 노인이 다 닦은 구두를 내 앞에 쓱 내놓았다
.

즐겁게 사시니 신발도 즐겁겠구려
.”

속으로인사치레겠지.’하고 노인 곁을 떠났다
.

전철에 올라탈 때쯤이었다. 그때서야 그분이 넌지시 해 준 말뜻을 알 것 같았다. 인생을 즐겁게 살라는, 나에 대한 은근한 충고였음을. 구두를 닦으며 예순을 넘게 살아온 그분이 어찌 나의 사람됨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하겠는가?

 

(권영상, ‘뒤에 서는 기쁨중에서)

 


출처 : 레지오단원들의 쉼터
글쓴이 : ♥보니파시아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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