집에 돌아오는데 열여덟 살 된 아들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어요.
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아들은 여자친구한테서 얻은 꼴사납고 색 바랜 티셔츠를 입고 식탁 앞에 앉아 있었어요.
아들이 그 옷을 입고 있는 걸 이웃 사람들이 보고 자식 옷도 제대로 못 입힌다고 흉볼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.
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난 옷차림부터 시작해 아이를 야단쳤어요.
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아 우리 관계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.
그날 나는 당신의 워크숍에서 해 본 '삶과 작별하는 연습'을 떠올렸어요.
그리고 삶이란 나에게 잠깐 동안 맡겨진 선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.
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영원히 내 곁에 두지는 못하겠지요. 문득 이런 가정을 한번 해봤어요.
'만일 내일 아들이 죽는다면, 난 어떤 기분일까?'
그러자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한 엄청난 상실감과 후회의 감정을 갖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.
마음속으로 계속 이렇게 끔찍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아이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상상해 봤어요.
나는 아들에게 정장을 입혀서 묻지는 않을 거예요. 정장을 입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거든요.
그 애가 그토록 좋아하던 지저분한 셔츠를 입혀서 묻을 거예요.
그렇게 그 애의 삶을 기리게 될 거예요.
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.
'아들이 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겠구나.'
그 애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선물을 줄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.
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에게 마음대로 티셔츠를 입어도 좋다고 말했어요.
그리고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.
아들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리고, 있는 그대로의 그 애를 사랑하니까 정말 행복했어요.
나는 더 이상 아들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.
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걸 알았거든요.
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외, '인생수업' 중에서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