좋은 글이에요.

[스크랩] 능소화 편지

황승면(바실리오) 2009. 9. 5. 19:15

- 능소화 편지/허영숙 - 꿈결인가, 그대를 만난 것이 단 한 번 본 것뿐인데 허락도 없이 들어앉은 그대를 쫓아 일생을 소진하며 여기까지 왔다 잠깐 스치고 오래 헤어져 있었으니 그리운 문장들만 넝쿨을 이루고 자라 담벼락이 환하다 그대 발소리는 멀고 그 소리 담으려 나를 더 크게 열어 한 잎 귀 넓은 꽃으로 핀다 한여름 땡볕을 딛고 담장을 타고 오르는 이 지독한 흡착은 그대가 일생에 또 한 번 이 길을 지나 갈 때 꽃 무더기에 숨은 나를 모르고 스쳐갈까하는 염려 때문이다 먹구름을 밀며 하늘이 뒤로 숨고 그대와 나의 먼 행간에도 빗방울이 든다 간당간당한 꽃대를 아프게 움켜쥔다 이토록 간곡하고도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뼛속까지 훑고가는 소나기가 내리기전에 내가 먼저 나를 놓아버릴 것이다

출처 : 사랑과 평화의 샘
글쓴이 : jeosahp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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