좋은 글이에요.

[스크랩] 오월 편지 / 도종환

황승면(바실리오) 2009. 5. 30. 07:08


 

 

 


 

 

 


오월 편지
도종환 詩

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.
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
한 달 두 달처럼 긴데
당신으로 인해 비어있는 자리마다 
깊디깊은 침묵이 있습니다.
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.
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 오면 꽃이 핍니까
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.
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
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.
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
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.
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
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
아름다운 일입니다.
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.
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
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
사는지 아는 까닭에
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
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.
소리없이 흔들리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
그렇게 흔들려
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
또 하루를 보내고
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자리로 
바람이 가득가득 밀려옵니다.
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데가 많던 
당신의 마음도
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
이 땅을 다녀갑니까
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와 머물다 
소리 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.
             


    출처 : 한국 가톨릭 문화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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